이 책은 생사가 걸린 심각한 질병에서 얻는 인간의 깨달음을 주제로 하는 책이다. 그래서 암 같은 죽을병의 예시가 많이 나온다. 다만 질병이 인간에게 항상 깨달음을 준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. 심각한 육체적 질병은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지만, 심각한 정신장애는 인간에게 깨달을 능력마저 빼앗아가 버리기 때문이다.




이 책의 초반에 매우 인상적인 예시가 나온다. 사회봉사(환경보호운동)에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자기 자신의 건강과 가족의 행복을 등한시하는 예다.


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의 예시와 같이 사는 것은 잘못되었다. 일단 나 자신이 행복해야 남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고, 나 자신이 먹고살아야 남의 먹고살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과 같다. 내가 가지지도 못한 것을 남에게 가지라고 시키는 사람은 자기모순적인 사람이다.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 때문에 사회적경제 리뷰 블로그를 그만뒀다. 내가 먹고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남의 먹고사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이다.


하지만 사회공헌 분야의 열악한 환경과 과도한 근무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다. 그러니까 이 상황에 처한 사람이 바꾸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. 책 <차라리 꿈꾸지 마라> 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. 




봉사하는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.


희생하는 삶을 무한 칭송합니다.


욕심 없는 삶에 찬사를 보냅니다.


그 길


내 아이가 걷겠다고 하면 절망합니다.




사회공헌 분야가 이렇게 된 이유는, 돈은 안벌리면서 하려는 사람은 많기 때문이다. 그리고 사회공헌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힘들다는 걸 당연시하는 문화도 문제다. 남 돕는답시고 자기 가족 생계조차 유지 안될 정도로 박한 임금을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. 다시 말하지만 내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남을 돕는 것은 불가능하다.




후반에 나온 예시 중 왕자가 병아리가 된 예시도 생각할 만한 부분이 있다. 인간의 개성은 기본적으로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. 그러나 그게 지나치면 정신병이 되고 남에게 피해주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. 남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개성이 지나친 사람의 성격을 인정해줘야 하는가? 어금니아빠(이영학) 같은 사람의 성격도 개성으로 인정해줘야 하는가?




이 책의 예시들 중 상당수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이슈를 담고 있다. 그냥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곤란한 이유다.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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